바이러스 클리어런스(Viral Clearance): 바이오의약품의 안전성 확보 핵심 - 개념 및 사례
바이러스 클리어런스(Viral Clearance): 바이오의약품의 안전성 확보 핵심 - 개념 및 사례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기존의 합성의약품으로는 치료가 어려웠던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오의약품은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공정 전반에 걸쳐 외래성 바이러스에 오염될 위험이 항상 존재합니다. 이 오염은 제품의 안전성, 나아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에서 바이러스 오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불활화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이를 바이러스 클리어런스(Viral Clearance)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단계를 넘어, 바이오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전략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이러스 클리어런스의 중요성, 주요 기술, 그리고 규제 동향에 대해 바이오 공정 전문가의 시각에서 심도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1. 바이러스 클리어런스의 중요성: 왜 바이러스 제거가 필수적인가?
바이오의약품은 세포주를 기반으로 생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원료 물질(세포주, 배양 배지, 혈청 등)이나 공정 자체에서 외래성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바이러스에 오염된 의약품이 환자에게 투여될 경우, 심각한 감염이나 예상치 못한 면역 반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환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MFDS)는 "세포 유래 생명공학 의약품의 바이러스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바이러스 안전성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ICH Q5A(R2)와 같은 가이드라인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이러스 클리어런스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제약 산업의 윤리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바이러스 제거 공정의 성공 여부는 최종 제품의 신뢰성을 결정하며, 이는 곧 기업의 평판과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의 초기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2.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기술: 제거와 불활화의 이중 전략
바이러스 클리어런스는 크게 두 가지 주요 전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바이러스 입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바이러스 제거(Viral Removal)와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상실시키는 바이러스 불활화(Viral Inactivation)입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을 조합하여 다중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1. 바이러스 불활화 (Viral Inactivation)
바이러스 불활화는 화학적 또는 물리적 처리를 통해 바이러스의 감염성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DNA/RNA)이나 단백질 외피를 변성시켜 더 이상 숙주 세포를 감염시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2.1.1. 저 pH 처리 (Low pH Treatment)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 mAb) 생산 공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pH를 3.5~4.0 수준으로 낮추면 외피를 가진 바이러스(enveloped virus)가 효과적으로 불활화됩니다. 낮은 pH 조건에서 단백질은 안정성을 유지하지만, 바이러스의 지질 외피는 파괴되어 감염력을 잃게 됩니다. 이 방법은 간단하고 효과적이지만, pH에 민감한 단백질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2.1.2. S/D (Solvent/Detergent) 처리
혈장 유래 제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유기용매(solvent)와 계면활성제(detergent)를 사용하여 외피 바이러스의 지질막을 파괴합니다. 트라이-N-부틸 인산염(TNBP)과 폴리소르베이트(polysorbate) 80 조합이 대표적입니다. 이 방법은 외피가 없는 바이러스(non-enveloped virus)에는 효과가 낮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2.1.3. 열처리 (Heat Treatment)
단백질 제제에 열을 가하여 바이러스를 불활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알부민과 같은 혈장 단백질 분획제제에 주로 사용되며, 60°C에서 수 시간 동안 처리하여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합니다.
2.2. 바이러스 제거 (Viral Removal)
바이러스 제거는 물리적 방법으로 바이러스 입자 자체를 분리하는 기술입니다. 단백질이나 기타 생산 물질과 바이러스의 크기, 전하 등의 차이를 이용합니다.
2.2.1. 크로마토그래피 (Chromatography)
크로마토그래피는 단백질을 정제하는 핵심 공정이지만, 바이러스 제거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이온 교환 크로마토그래피는 바이러스 입자와 단백질의 표면 전하 차이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제거합니다. 예를 들어, 음이온 교환 수지(Anion Exchange Resin)는 음전하를 띠는 단백질을 흡착시키고 양전하를 띠는 바이러스는 통과시키거나, 그 반대의 원리로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2.2.2. 나노여과 (Nanofiltration)
나노여과는 바이러스 클리어런스의 핵심적인 공정 중 하나입니다. 극도로 미세한 기공(pore)을 가진 멤브레인 필터를 사용하여 바이러스 입자를 물리적으로 걸러냅니다. 필터의 기공 크기는 보통 15~70nm 수준으로, 바이러스의 크기(20~200nm)보다 작지만 치료용 단백질(mAb, 약 10nm)보다는 훨씬 큽니다.
필터 종류 | 주요 대상 바이러스 | 기공 크기 |
레트로바이러스 필터 | 레트로바이러스 (50nm 이상) | 50nm 내외 |
파보바이러스 필터 | 파보바이러스 (20nm 내외) | 20nm 내외 |
나노여과는 높은 바이러스 제거율을 보장하지만, 필터 막힘(fouling) 현상으로 인해 단백질 회수율이 떨어질 수 있어 공정 최적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3.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공정 검증 (Validation)과 규제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공정은 단순히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정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공정 검증(Process Validation)이 필수적입니다. 이 검증은 규제 기관의 승인을 받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3.1. 검증 방법론: 스케일 다운 모델 (Scale-down Model)
실제 생산 규모(full-scale) 공정에서 바이러스를 직접 투입하여 실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실험실 규모의 축소 모형(scale-down model)을 구축하고, 여기에 특정 바이러스(모델 바이러스, model virus)를 의도적으로 주입한 후 공정별 바이러스 제거 효율을 평가합니다. 이 축소 모형은 실제 공정과 동일한 조건(온도, pH, 유속 등)을 재현해야 합니다.
3.2. 바이러스 감소 계수 (Virus Reduction Factor)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공정의 효율은 바이러스 감소 계수(Virus Reduction Factor, VRF)로 나타냅니다. 이는 공정 투입 전후의 바이러스 양을 로그10 값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정 전 바이러스 역가가 107이었고 공정 후 103으로 감소했다면, VRF는 입니다.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친다면 각 단계의 VRF를 합산하여 전체 바이러스 제거 성능을 평가합니다.
3.3. 규제 기관의 요구사항
바이오의약품의 바이러스 안전성 평가는 ICH Q5A(R2)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국제 규제 기준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세포주 특성 분석, 원료의 바이러스 검사, 그리고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공정의 검증을 포함합니다. 각 공정 단계별로 예상되는 바이러스 오염 리스크를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바이러스 제거/불활화 공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4.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기술의 최신 동향 및 시장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성장에 따라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노여과 기술은 필터 소재 및 구조의 혁신을 통해 단백질 회수율을 높이면서도 바이러스 제거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4.1. 기술 공급 기업 및 사례
글로벌 바이오 공정 장비 시장은 Merck Millipore, Pall (Danaher), Sartorius, Asahi Kasei 같은 소수의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 필터와 크로마토그래피 레진을 개발하여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Merck Millipore: Viresolve® Pro Solution은 단클론항체 및 재조합 단백질 공정에 최적화된 바이러스 제거 필터 솔루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높은 처리 용량과 낮은 막힘 현상을 특징으로 합니다.
Pall Corporation: Ultipor® DV50 필터는 파보바이러스와 같은 소형 비외피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데 사용됩니다. Pall은 다양한 크기의 바이러스 필터 라인업을 통해 고객사의 공정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4.2. 국내 개발 현황
과거에는 바이오 공정 장비와 소모품의 대부분을 해외 기업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와 같은 국제적 이슈를 겪으며 바이오 소재 및 장비의 국산화가 중요해졌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바이러스 필터와 같은 핵심 공정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바이오 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론: 바이오 안전성의 최전선
바이러스 클리어런스는 바이오의약품의 생산 과정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는 단순히 규제 준수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환자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한 제약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입니다. 바이러스 불활화와 제거 기술의 효과적인 조합, 그리고 철저한 공정 검증을 통해 우리는 바이오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바이오 공정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새로운 바이러스 제거 메커니즘을 가진 필터 개발, 그리고 공정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스마트 공정 기술은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분야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이처럼 바이오 안전성의 최전선에서 바이러스 클리어런스 전문가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